제목라스베가스를 개조한 ‘카지노 전설’…스티브 윈2022-04-07 08:04
작성자 Level 10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스티브 윈’의 존재는 가히 신화적이다.

디즈니랜드가 어린이들의 놀이터라면, 라스베이거스를 ‘어른들의 놀이터’로 만든 인물이 바로 스티브 윈이다.

‘라스베이거스 황제’ 또는 ‘카지노 왕’으로 불리고 있는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분수쇼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프레시안

 


아버지가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는 것을 숱하게 목격한 그는 “카지노에서 돈을 버는 유일한 길은 카지노를 소유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또 실제 그는 카지노 재벌이 되었다.  
 
자료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빙고 게임장을 운영해 번 돈을 들고 아들 스티브 윈을 동반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갔다가 빈털터리로 메릴랜드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과정에서 카지노산업의 매력에 심취했고 후에는 라스베이거스 황제라는 칭송을 받는 디딤돌로 삼았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 마이클 윈의 매릴랜드 빙고게임장의 사업을 도와주면서 게임 사업에 대하여 학습했다. 
 
<나는 1950년대 라스베이거스는 사막의 작은 도시로 기억하고 있다. 모래 위에서 매일 승마를 했다. 카지노 도박장의 책임자는 하이칼라 옷을 입고, 칵테일을 나르는 웨이트리스들은 정말 예뻤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사업이다. 영화에서 본 듯한 화려함과 은행의 안정감이 있는 사업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나는 태어난 이후로 식사 한 끼, 수업료 한 푼, 옷 한 벌이라도 도박을 통하지 않고 들어온 것이 결코 없는 그런 아이였다. 1963년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한 뒤에는 온 세상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후, 나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의 혁신 라스베이거스에 답이 있다’에서> 
 
1963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아버지를 잃은 그는, 빙고게임장을 인수해 운영하다가 라스베이거스 진출을 위해 1967년 빙고사업을 접었다. 
 
마침내 그는 대단히 매력적인 사업이라고 생각했던 ‘카지노의 중심지’, 라스베이거스로 아내 엘렌과 함께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때 윈은 자신의 든든한 동반자인 밸리 뱅크의 CEO 패리 토머스를 만나게 됐고, 그를 통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주류판매 독점사업을 할 수 있는 자금을 대출받으면서 라스베이거스에 기초를 다지게 된다.

 

 

▲신기루를 테마로 한 미라지 호텔은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건축물에 선정된 명품 호텔 리조트다. ⓒ프레시안

 
그는 수년간 주류 판매업을 통해 번 돈과 토머스에게서 대출받은 돈으로 부동산 투자를 하며 종자돈을 만들 수가 있었다. 
 
당시 하워드 슈즈가 소유하던 시저스 팰리스 인근의 주차장을 110만 달러에 구입했다가 225만 달러에 판매하면서 순식간에 2배가 넘게 남는 수익을 올렸다. 
 
이를 계기로 1975년 윈은 본격적으로 카지노 사업 진출을 결심하고 다운타운에 위치한 ‘골든 너깃’카지노 인수를 준비하였다. 골든 너깃은 카지노 입구에 세계에서 가장 큰 금덩어리(28킬로그램)를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골든 너깃의 특징은 최소 5만 달러 이상의 하이롤러(고액 도박꾼)만 이용할 수 있는 객실이 별도로 제공된다. 또 하이롤러에게만 골든 너깃의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제공하고 있다.  
 
골든 너깃 골프장은 개장이후 매년 미국 PGA투어가 개최되고 있을 정도로 코스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지만 일반 고객은 라운딩이 불가능하다.  
 
골든 너깃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윈은 카지노의 돈이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카지노 운영자의 무사안일과 무능력을 파악하게 된다. 
 
당시 골든 너깃에 근무하는 딜러와 감독, 교대담당 책임자들이 매일 오전 4시경 바에서 만나 거액의 현금을 나누어 가졌던 것이다. 이런 돈이 연간 수백만 달러가 넘었다. 이런 고급 정보를 그는 골든 너깃의 간부에게서 전해 들었다.
 
골든 너깃의 주식 50% 이상을 확보한 윈은 회사 책임자를 바꾸고 경영권을 확보한 뒤에는 100만 달러의 이익에 불과하던 액수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425만 달러로 증가했다. 
 
그리고 타워호텔 신축 뒤인 1977년에는, 순수한 연간 수익이 1200만 달러가 넘었다. 
자신이 원하는 카지노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한 윈은 뉴저지의 애틀랜틱시티의 아름다운 해변산책로에 위치한 낡은 모텔을 850만 달러에 인수했다. 
 
낡은 모텔을 헐어버린 윈은 이곳에 1억4000만 달러를 투자해 506개의 객실을 갖춘 애틀랜틱시티에서 가장 호화롭고 환상적인 호텔카지노를 건축했다. 
 
골든 너깃으로 명칭이 붙은 이 호텔은 아치형의 거울로 덮인 천정에 크리스털 샹들리에를 달고 스테인드글라스와 대리석 기둥으로 만들어져 애틀랜틱시티의 변화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명품 호텔로 알려진 마카오 윈 호텔은 라스베이거스 윈 호텔을 그대로 복제해 만들었다. ⓒ프레시안

 
규모가 작지만 관광객과 도박사를 불러들이는 가장 아름다운 호텔로 소문이 나자 그곳의 카지노 사업가인 밸리스가 4억4000만 달러에 인수를 제안했다. 
 
당시 뉴욕의 중개인으로 활동하던 도널드 트럼프(현 미국 대통령)는 골든 너깃을 2억 2000만 달러에 인수하려고 하던 상황이었다. 
 
1988년 윈이 라스베이거스에 컴백한 당시는 공교롭게도 15년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들이 대부분 투자에 소홀하고 이윤 극대화에만 관심을 쏟던 시기였다. 
 
윈은 시저스 팰리스 바로 옆에 102에이커(41만2700㎡)의 부지를 사들여 ‘신기루’와 ‘열대’를 테마로 한 카지노 역사상 가장 세련되고 가장 비싼 미라지 호텔을 신축했다. 
 
무려 6억 3000만 달러가 투자된 미라지는 30층 건물에 3049개의 객실, 호텔 로비에는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76만 리터의 물이 채워진 아쿠아리움과 웅장한 열대의 숲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아쿠아리움에는 1400만 달러를 들여 구입한 돌고래를 비롯해 열대산 물고기와 가오리 등 수천 종의 물고기들이 유영을 즐기고 있다. 
 
이 때문에 미라지 호텔은 입구 로비가 환상적이며 전체 시설은 청동과 금으로 뒤덮였고, 화려한 가구들로 가득 채워졌다. 
 
또한 호텔 입구에 설치된 화산쇼는 미라지를 관광객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일등 공신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1989년 개장한 미라지 호텔은 기존 호텔들보다 50억 달러가 더 투자되었지만 첫 해 2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려 하루에 100만 달러의 적자를 볼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한 순간에 불식시켰다. 
 
선구자적 건축물로 기록된 미라지 호텔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물’에도 선정됐고 라스베이거스의 변화를 주도한 건축물로도 이름을 남겼다. 

 

 

 

▲라스베이거스 윈 호텔에 전시된 350억 원 짜리 제프 쿤스의 작품 뽀빠이. ⓒ프레시안

 
미라지 호텔이 대박을 거두면서 스티브 윈은 라스베이거스는 물론 미국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미라지가 2년 연속 거액의 흑자를 기록하자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카지노로 등극하였고 언론에서는 카지노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고 극찬했다. 
 
투자자들은 새로운 카지노호텔 신축을 기대했고 마침내 윈은 2년 뒤 객실 수 2999개에 4억3000만 달러를 들여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을 테마로 한 ‘트레져 아일랜드’호텔을 신축했다. 
 
트레져 아일랜드는 호텔 입구에 대형 호수를 만들어 실물 크기의 해적선과 영국제국의 군함을 만든 뒤 당시 전투를 재현하는 ‘부커니어 베이’(해적선 쇼)를 실외 전시무대로 만들었다. 
 
해적선과 영국제국 군함이 대포를 쏘고 전문 스턴트 맨들이 부커니어 해전을 실전처럼 실감나게 연출하며 불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은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감동과 전율을 안겨 주었다. 
 
윈이 화산쇼와 해적선 쇼 등을 연출하는 미라지에 이어, 트레져 아일랜드에서도 연이은 대박을 터뜨리자 라스베이거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급증했고, 이들 카지노들도 고객이 넘쳐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윈의 세 번째 야심작은 시저스 팰리스 남쪽, 파산해 버려진 둔즈 호텔카지노였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마법사 같은 존재감을 드러낸 윈은 3번째 호텔카지노 사업을 시작하면서 색다른 이벤트를 준비했다.
 
<상식을 뛰어넘는 거액을 들일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기에 앞서 윈은 라스베이거스식의 스펙터클한 파티를 준비한다. 트레져 아일랜드의 개장과 둔즈의 종말을 '함께 축하할 수 있는 볼거리였다.  
 
1993년 10월 27일 20만 명의 사람들이 둔즈를 돌무더기로 변화시킬 마지막 내부폭파 이벤트를 구경하기 위해 스트립 거리에 몰려들었다. 요란한 음악소리가 울려 퍼졌고 TV카메라가 바쁘게 돌아갔다. 기자들은 전 세계에 생중계 될 장면의 의미를 여러 언어로 실황중계 하기 시작했다.  
 
‘라스베이거스 리뷰저널’ 칼럼리스트 존 스미스도 기자들 틈에 있었다. 폭파에 앞서 진행된 불꽃놀이에 100만 달러를 들였다는 것에서 시작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왕 스티브 윈의 새로운 도전을 소개했다. ‘생각의 혁신 라스베이거스에 답이 있다’에서> 

 

 

 

▲라스베이거스 3대 빅쇼로 알려진 윈 호텔의 르 레브 쇼. ⓒ프레시안

 
44만5000㎡의 부지를 조성한 윈은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영감을 얻어 ‘아름다운 휴가’를 테마로 한 ‘벨라지오 호텔’에 8억 달러를 투자해 3000개의 객실과 인공호수를 만들었다.  
 
호텔 입구에 설치진 인공호수에서는 음악에 따라 물줄기가 춤을 추는 세계 최고의 분수쇼가 펼쳐지고 호텔 실내에는 온실과 미술품 갤러리, 그리고 명품 숍을 꾸몄다. 
 
1998년 10월 스티브 윈 소유의 미라지 리조트는 벨라지오가 개장했다. 
당시 언론은 벨라지오를 소개하면서 스티브 윈 회장의 컬렉션 3억 달러어치에 관심을 보였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컬렉션은 피카소, 반 고흐, 고갱, 마티스, 세잔느, 모네, 르누아르 등 세계적인 화가들의 진품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윈의 소장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림은 피카소가 젊은 애인을 그린 ‘꿈(The Dream)’이다.
 
윈은 이 작품을 1997년 4800만 달러(576억 원)에 샀는데, 2006년 당시 이 작품을 팔겠다고 공개하는 장소에서 실수로 자기 팔꿈치로 그림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당시 기자들 수십 명이 보는 가운데 이런 일이 펼쳐지자 즉각 전 세계에 보도 되면서 이 그림은 더욱 더 유명해졌다.  
 
특히 벨라지오의 미술품 갤러리는 스티브 윈의 녹음된 목소리로 세계적인 명화를 안내하면서 관람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 때문에 밸라지오 호텔은 최고급 호텔의 효시가 되었고, 세계 최고의 명품호텔로 자리매김하면서 이후 라스베이거스에서 뉴MGM, 엑스칼리버, 만달레이베이 등의 초호화 호텔들이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밸라지오 호텔 이후 1990년대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거리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고, 윈은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따 건물 외관을 순금으로 도금한 문양의 윈과 앙코르 호텔을 지었다. 
 
윈 호텔에는 미국의 위대한 화가이자 작가인 ‘제프 쿤스’의 작품 ‘뽀빠이’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작품의 가격은 무려 350억 원에 달하고 있다. 
 
윈 호텔은 특히 MGM그랜드호텔의 ‘카쇼’ 등 라스베이거스 3대 빅쇼로 알려진 수중에서 펼쳐지는 ‘르 레브 쇼’가 유명하다. 이들 쇼에 출연하는 국가대표 급 수영선수와 체조선수 출신들의 연봉은 모두 1억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윈은 2007년 마카오에도 진출해 마카오 윈과 앙코르 호텔 카지노를 개장한데 이어 지난 2016년 8월에는 마카오 코타이 지구에 40억 달러를 투자한 ‘윈 팔레스’의 문을 열었다. 
 
‘꽃’을 테마로 한 윈 팔레스는 곤돌라와 분수쇼를 비롯해 럭셔리한 명품관, 고급 레스토랑, 컨벤션 센터 등이 유명하다.
 
특히 윈은 일본 오사카와 도쿄에 1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복합 카지노리조트에 마지막 열정을 불태울 채비를 하고 있다.
 
열정적으로 살아오고 라스베이거스에 신화를 창조한 윈은 그러나 자신의 화려한 인생을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지난 1995년 스티브 윈의 성공적인 삶을 다룬 책 ‘러닝 스케이드-라스베이거스 카지노왕 스티브 윈의 삶과 격정의 시대‘가 출간되자 그는 노발대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일대기를 주인공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며 그는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연히 라스베이거스 법정은 스티브 윈의 일방적인 승리를 선고했다. 그러나 재판이 끝난 뒤 담당 판사의 남편이 윈의 회사에 고위직으로 채용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스티브 윈은 라스베이거스를 어른들의 놀이터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프레시안

 
그는 라스베이거스의 매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라스베이거스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무한한 상상력을 갖고 새로운 명물을 건설하려는 이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구촌 어디에서 카메롯 성과 피라미드가 연이어 있고 몬테카롤로 옆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으며 로마제국과 이탈리아 호수가 붙어 있는 것을 라스베이거스 말고 어느 곳에서 찾겠는가? (라스베이거스는)어떤 곳이든 관광객을 몰두하게 만든다. 앞으로도 최고의 작품들이 계속 출현할 것이다.”